딤창
지역사회와 시대의 요청에 맞는
융합형 기술인재를 양성하다
한국폴리텍Ⅱ대학 남인천캠퍼스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염전로333번길 23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지면적 3만 6,692m²(11,099평), 건물 연면적 1만 6,338m²(4,942평)으로,
대학 본관, 산학협력관, 희망관(기숙사), 어울림관(식당) 및 3개의 공학관과 운동장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연혁

  • 1975.04 노동청 인천직업훈련원 설립(ADB 차관)
  • 1975 인천직업훈련원 기숙사 건립
  • 1976.03 일반훈련 제1기 정규과정(기능사 2급, 주간 1년) 훈련 개시(8개 공과)
  • 1976.03 박정희 대통령 방문(1차)
  • 1977.02 교사아파트(17평형) 입주(59세대)
  • 1978.10 박정희 대통령 방문(2차) 및 박근혜 영애 방문
  • 1982.02 학생관 준공
  • 1989.12 자동차실습동(강당) 준공
  • 1994.07 인천직업전문학교로 교명 변경
  • 1997 재직근로자 능력개발지원 전용시설 설치
  • 1998.07 교육동(명품창의관·실용혁신관) 준공
  • 2001.03 공과(직종) 명칭 변경 및 지식기반직종 개편
  • 2006.03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교명 변경
  • 2007.10 산학협력관 개관
  • 2010.07.06 자동차과 도장실습동 준공
  • 2012.03 희망관(BTL 기숙사) 준공
  • 2013.09 대학 본관(강당·자동차실습장) 준공
  • 2016.08 지역·산업 맞춤형 인력양성사업 용접교육센터 개소
  • 2018.02 신중년특화과정 시범 운영
  • 2019.04 자동차관 야외실습장 준공
  • 2019.05 스마트전자과를 로봇전자과로 변경, 미래성장 동력학과로 선정
  • 2020.03 2년제 학위과정 제1기 입학
  • 2020.12 항공MRO 특화캠퍼스 선포, 항공융복합기술센터 개소
  • 2021.03 전문기술과정 제46기, 항공MRO 하이테크과정 제1기 입학

CAMPUS BEST SCENE

  • SCENE 01. 씬 이미지 1
    세계 기능올림픽 제패 기념비 남인천캠퍼스 졸업생의
    세계 기능올림픽 금메달 수상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정문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 SCENE 02. 씬 이미지 2
    폴리텍 최초 항공MRO과 폴리텍대학 최초로 남인천캠퍼스에
    개설된 항공MRO과는
    항공 공장정비(MRO)를 위한
    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한다.
  • SCENE 03. 씬 이미지 3
    국내유일 학위과정 스마트표면처리과 대한민국 유일한 2년제학위과정으로
    개설된 스마트표면처리과는
    스마트 표면처리 전문 핵심기술
    인재를 양성한다.

GALLERY

스토리

‘성실과 정밀’, ‘참된 인간 기능연마’

한국폴리텍Ⅱ대학 남인천캠퍼스는 1975년 4월 28일 대통령령 제7607호에 따라 노동청 산하 인천직업훈련원으로 설립되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을 받아 설립한 인천직업훈련원은 1975년 기숙사와 본관, 실습동 등을 준공하고 1976년 3월 일반훈련 제1기 정규과정(기능사 2급, 1년 과정)을 선발, 교육훈련에 들어갔다. 주간 1년 과정은 금속공과, 건축공과, 기계공과, 기계조립공과, 용접공과, 전기공과, 전자공과, 인쇄공과 등 8개 공과(총정원 660명)를 개설했으며, 이 중 인쇄공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설한 공과였는데 검정 합격률 100%를 달성하며 인쇄업계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또한 야간 9개월 과정도 기계공작, 기계조립, 용접, 전기 등 4개 공과에 총 120명을 정원으로 운영했다. 주안공단 내 1만 3,000여 평의 대지에 건평 6,200여 평, 55종 1,768점의 장비와 공구를 확보한 인천직업훈련원의 구호는 ‘성실과 정밀’이었으며 원훈은 ‘참된 인간 기능연마’였다. 개교 이후 훈련원의 교사직 62명을 포함한 100명의 교직원들이 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수료생 전원이 취업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개원 이듬해인 1977년 3월 5일 제1기 기능사과정 수료식을 가진 수료자 중 진학·군입대·자영업을 제외한 취업희망자 480명 중 410명은 취업이 확정되었으며, 나머지 70명도 취업계약을 마쳐 100% 취업 기록을 수립했다. 자격증 취득률도 높아 기능사 2급 검정 합격률은 평균 87.8%에 달했다.

훈련원 설립을 주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3월 16일에는 예고 없이 인천직업훈련원을 방문, 훈련원장으로부터 현황을 보고받고 교사들의 신분 문제와 봉급 수준, 학생모집방법, 학생 기숙사 시설 등에 관해 질문했으며, “정예 기능공 양성에 알맞은 시설과 숙소로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인천직업훈련원은 교사 복리후생 증진 차원에서 교사아파트를 1977년 2월 완공했다. 1978년 10월 12일에도 인천에서 열린 제59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참석 후 예고 없이 인천직업훈련원을 시찰하여 기숙사를 증축해 훈련생들을 위한 휴게시설을 갖출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1977년 4월 1일 공공법인 인천직업훈련원은 노동청 인천직업훈련원을 인수하고 같은 해 5월 공공직업훈련법인으로 개편했다. 이어 1982년 3월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 산하에 통합된 인천직업훈련원은 1983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정규과정 개편을 전국 직업훈련원 중 최초로 실시하였다. 기계조립공과 30명, 전기공과 20명을 대상으로 1년차는 훈련원에서만 기초훈련을 하고 2년차 전문훈련은 훈련원에서 30%, 소속기업 현장훈련 70% 비율로 실시하였다. 3년차 응용훈련은 훈련원 20%, 소속기업 80% 비율로 실시했는데, 이는 수료 직후 산업현장에서 즉각 적응할 수 있는 기능인 양성을 위한 교과편성이었다. 사업주가 훈련생을 선발해 위탁교육 형식으로 이뤄졌으며, 3년 과정을 수료한 뒤에는 소속 기업에서 4년간 의무적으로 취업해야 했다. 이러한 정규과정 개편은 기업과의 산학연계를 통한 이원적 훈련으로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기능사 1급 자격의 고급 기능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훈련교사의 자질 향상을 위해 매월 공과에 1명씩 연구발표를 실시토록 하는 한편, 1인당 2회 이상 산업체 현장교육을 실시했다. 1982년에는 기계·전기·주물직종의 교사를 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인천제철 등에 2주씩 현장 파견교육을 시켰으며 각종 기계전시회 등에 참여토록 했다. 어학실력 향상을 위해 매일 방과 후 1시간씩 비디오로 영어교육을 실시했으며 해외연수를 보내기도 했다.

1986년부터는 직업훈련 고급화 및 기능훈련 대상 확대를 위해 여성에게 훈련원 문호를 개방, 인쇄과에 30명의 여성반을 따로 편성하기도 했다. 또 1987년 정부에서 스크린인쇄기능공 공인자격제를 실시함에 따라 한국스크린인쇄공업협회의 기자재 지원을 받아 스크린인쇄 분야의 기능공 훈련을 실시했다. 개설 당시 1년 과정을 계획하였으나 당시 스크린인쇄의 활용범위 확대와 정밀기술 요구에 따라 2년 과정으로 변경하였다.

아울러 1987년 12월에는 용접공과 훈련생 30명이 미국선급협회에서 시행한 국제공인 자격시험에서 전원 합격하여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 등 대기업에 전문용접인으로 취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인천직업훈련원 교직원과 훈련생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준비 범시민운동에도 참가했다. 스크린인쇄공과 훈련생들이 제작한 호돌이 모양의 각종 피켓과 컬러 전단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올림픽 참여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 성화봉송로 환경정비, 성화안치행사에 참여하는가 하면, 올림픽 기간에는 교직원과 훈련생들이 야구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그밖에 인천직업훈련원은 인도네시아와의 기술협력사업으로 1987년부터 매년 목재가공분야 훈련교사를 1명씩 초청해 3개월간 목재가공 전문연수교육을 실시했다.

한편 인천직업훈련원은 훈련생들에 대한 고강도 교육훈련을 바탕으로 국내외 기능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경기지방기능경기대회에, 2013년까지는 인천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21개 직종에서 금 29, 은 20, 동 16개를 수상했다. 또한 1977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도 8개 직종에서 금 5, 은 6, 동 2, 우수상(5위) 1개를 수상하였으며 1979년에는 제14회 전국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1989년 제30회 영국 버밍엄기능올림픽에서는 인천직업훈련원을 졸업한 현대자동차 소속 정호순 선수가 정밀기기제작직종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여 마거릿 대처 총리의 축하를 받았으며, 대한민국이 8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IMF 외환위기 한파 속에 취업률 100% 실현

1994년 7월 인천직업훈련원은 인천직업전문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기업의 수요에 부응하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1996년까지 3년에 걸쳐 45억 원을 투입해 3차원 측정기, CNC머시닝센터, 색분해기 등 신기술 첨단장비를 확보했다.

인천직업전문학교는 노동부 정책에 부응해 기업의 주문에 맞춰 교육과정을 편성, 재직근로자에게 직업훈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주문식 직업훈련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인천직업전문학교는 1997년에는 인천제철과 계약을 체결, 재직근로자 1,644명을 대상으로 28차에 걸쳐 제강실무라는 주문식 직업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인천직업전문학교는 주로 서비스계통이나 경공업 등 시설비가 덜 드는 공과 위주로 편성된 사설 교육기관의 교육과정에 비해 3D업종부터 중공업계통의 비중 있는 공과에 이르기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실무교육을 실시했다.

1997년 9월부터는 3개월 과정의 주부과정을 개설, 주부들을 대상으로 사무자동화(컴퓨터), 목공예, 사진제판 등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는 등 여성인력 취업 알선에 앞장서기도 했다. 1998년 3월부터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선호하는 학과를 여성에게 개방, 정밀기계과의 CNC(컴퓨터수치제어) 교육과정 15명, 특수용접반에 2명의 여성이 수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실직자들을 위한 재취업교육과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정밀기계가공, 산업설비, 금속, 전기제어 등 모두 13개 야간과정에 재취업을 원하는 실직자들이 쇄도했다. 이렇게 다양한 노력으로 IMF 외환위기 국면에서도 인천직업전문학교 출신들은 100% 가까운 취업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인천직업전문학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가 원하는 기능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혁신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2000년에는 지식사회의 도래에 대비해 훈련 직종을 지식기반 관련 직종으로 전환했다. 갈수록 산업기술이 복잡해지거나 융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복합기능을 익힐 수 있는 직종에 주안점을 두고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전자통신과 자동화용접 등 2개 과목을 신설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의 결과 2002년 직업능력개발 최우수기관에 선정되어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였다.

차별화·특성화로 산업전선의 최정예 일꾼 양성

2006년 3월 인천직업전문학교는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으로 통합되면서 한국폴리텍Ⅱ대학 남인천캠퍼스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와 함께 학훈도 ‘창의, 도전, 봉사’로, 교육목표는 ‘고도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정예의 인력양성’으로 변경했다. 또한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방침도 ‘건전한 국가관 및 직업관 확립’과 ‘수요자 중심의 교육 훈련 조성’, ‘개인별, 능력별 교과 운영’, ‘자발적 탐구 의욕 고취로 창의력 배양’으로 정했다.

이렇게 새로 출범한 남인천캠퍼스는 다른 캠퍼스와의 차별화 및 특성화를 실현, 산업전선의 최정예 일꾼 양성을 선도해 나가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남인천캠퍼스는 ‘Only Job, Only Korea Polytech’을 모토로 차별화·내실화·다변화·국제화에 중점을 두고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일반대학이나 민간기관에서 기능인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을 고려해 남인천캠퍼스만의 차별화 및 특성화 교육에 힘을 쏟았다.

남인천캠퍼스의 차별화·특성화 교육 방향은 21세기를 이끌어 갈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Human-tech 실현과 기술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필수 능력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 재학생 1명당 하나의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을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추진했으며 산업인력시장의 글로벌화를 대비해 강도 높은 영어회화 교육을 실시했다.

남인천캠퍼스의 차별화·특성화 교육훈련은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2012년 10월 22일 발표된 제52회 국가기술자격 기능장 시험에서 기능계의 꽃으로 불리는 전기기능장을 한꺼번에 7명이나 배출하는 쾌거를 거둔 것이었다. 특히 전기기능장은 합격률이 평균 20~30% 수준에 머무는 분야라서 더욱 의미 있는 성과였다. 같은 해 7월부터 정규 수업 외에도 주말마다 특별훈련을 진행하며 구슬땀을 흘린 결과였다.

창의적이고 경쟁력 강한 미래형 인재양성

남인천캠퍼스는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첨단교육시설을 확충하고 교과를 개편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바탕으로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양성에 공을 들였다. 2016년 8월 17일 남인천캠퍼스는 지역 및 산업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을 선도하는 용접교육센터를 개소했다. 기존의 인적인프라 및 시설, 장비 등을 활용하여 인천지역 용접 분야 기업에 우수한 인력을 공급한다는 취지였다.

이와 함께 남인천캠퍼스는 창의적인 기술인재 양성과 경쟁력 상승을 위해 2020년부터 스마트전자과를 지능형로봇 분야에 특화한 로봇전자과로 개편했다. 국내 산업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중심으로 급변하는 가운데 지능형로봇 분야의 기술인재를 양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로봇전자과 개편에 앞서 남인천캠퍼스는 FAB LAB(종합제작실습실)을 구축하고 3D프린터·레이저커팅기 등 첨단장비를 구비해, 한 공간에서 아이디어 구상-설계-제품제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아울러 로봇 기초이론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로봇설계까지 다양한 로봇 관련 기술교육뿐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시제품 제작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2D·3D CAD 교과목을 편성하기도 했다.

한편 남인천캠퍼스는 2020년 12월 1일 ‘항공MRO 특화캠퍼스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날 선포식을 시작으로 남인천캠퍼스는 항공MRO 인력을 양성하는 특화캠퍼스로 조성해 나가고 있다. 먼저 항공MRO 하이테크과정을 신설해 2021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항공부품가공 러닝팩토리와 항공스마트표면처리 러닝팩토리 등으로 구성된 항공융복합기술센터를 개소하였다.

향후 남인천캠퍼스는 모든 학과를 항공MRO에 초점을 맞춰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항공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MRO 부문은 활성화되지 못해 국내 MRO 기업은 중국의 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 세계 항공MRO 시장은 연평균 4.1%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는 자체 정비기술 부족으로 정비 결항률과 MRO정비의 해외 외주화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인천광역시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은 국내 항공MRO산업 활성화를 위해 인천공항 인근에 MRO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MRO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력양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인천캠퍼스는 국내 항공MRO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미래형 인재양성의 요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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