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훈련교사 양성을 위한 국내 최초의 직업훈련원
한국폴리텍II대학 인천캠퍼스의 전신은 1968년 출범한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훈련소인 중앙직업훈련원이다.
경제재건이 이루어지던 1960년대 정부는 직업훈련사업을 추진했는데, 이때 가장 시급한 것이 직업훈련교사의 확보였다. 공공직업훈련기관의 교사는 장기과정을 통해 이론과 실기 능력을 겸비한 인력을 양성하고, 현장훈련 위주로 진행되는 사내직업훈련의 직업훈련교사는 현장 즉시 투입과 실기 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해당 사업장에서 산업별 실무작업의 경험이 있는 자를 선발해 단기과정으로 양성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직업훈련교사의 장·단기 훈련과정을 운영할 직업훈련원의 설립이 필수였다. 국가가 직접 설치하고 관장하기로 한 것은 직업훈련의 중추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직업훈련사업을 촉진하려는 의도였다. 기관명은 직업훈련교사 양성과 함께 직업훈련기준 작성, 교재편찬, 직무 및 평가분석, 기타 일반공공직업훈련시설에 대한 지도·감독 등을 담당하는 중추적 기관이라는 의미에서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부지를 확보해 직업훈련시설을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재원 확보가 어려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보건사회부 산하 국립청소년직업보도소의 인수였다. 인천시 북구 구산동에 소재한 국립소년직업보도소는 무의탁 소년을 위한 직업보도 시설이었다. 휴전 직후 전쟁고아 등을 수용하기 위해 AID 원조자금으로 설치됐으며, 1961년 11월 3인의 기업인이 기증한 사회사업기금 2억 환으로 증축했다. 초기에는 제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미용·이발·도장·목공·판금 등의 직종이 대부분이라 활용도가 낮았다. 게다가 시설장비의 노후화로 인해 그즈음에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노동청은 상급기관인 보건사회부에 국립청소년직업보도소를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관을 건의했다. 보건사회부가 이를 수락함에 따라 1967년 9월 소년직업보도소 건물 27개 동과 부지를 인수하고, 1968년 6월 25일 중앙직업훈련원이 문을 열었다. 설립목적은 기능인력 육성에 필요한 직업훈련교사 양성과 직업훈련교사 면허과정, 직업훈련에 관한 과학적인 조사·연구, 직업훈련계획의 수립·실시 및 분석·평가, 직업훈련의 지도와 지원, 통신훈련과 기술지도 등이었다.
인수 당시 청소년직업보도소는 대지 18만 평에 노후한 작업동 10여 동과 기숙사를 겸한 관리동, 그 밖의 부속시설이 전부였다. 그대로 사용하거나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으나 중앙직업훈련원의 훈련직종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런 이유로 교사양성교육을 잠시 보류하고 17세 미만의 중졸 학력자를 대상으로 주물·목형·용접·판금 및 전기기기 수리 등의 직종을 1년 과정으로 진행하는 기능사 양성과정을 운영했다.
같은 해 9월에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원조한 131만 달러와 정부지원금 8억 6,250만 원을 시설 및 운영비에 투입했다. 원조기관이 장비비와 전문가 및 연수생 파견비용을, 우리 정부가 건물 등 시설비와 운영비를 부담했다.
1970년을 전후해 주물, 목형과 실습장, 자동차공과 실습장, 전기, 전자, 판금, 용접공과 실습장으로 이루어진 제1작업장을 신축하고, 2년 과정인 직업훈련교사과정을 개설했다. 이로써 중앙직업훈련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1971년 4월에는 신축 본관이 완성되어 백두진 국무총리를 비롯해 내외귀빈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인 개원식을 거행했다. 10만 5,000평의 대지 위에 기계작업장, 자동차작업장, 시청각교실, 기숙사 등 총 39동 5,300여 평의 건물이 들어선 중앙직업훈련원은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였다.
1972년부터 6개 공과에서 첫 직업훈련교사(180명)를 배출했다. 같은 해 6개 공과의 2년 정규과정 외 단기과정 및 면허훈련과정을 개설했으며, 감독자훈련과 통신훈련을 위한 특수훈련코스도 시작했다. 이로써 직업훈련교사(2년과정), 기능공훈련(1년과정), 기초훈련 및 특수훈련(2년과정)으로 정비됐다. 직업훈련교사 양성을 위한 정규훈련과정 6개 공과는 기계, 자동차, 전기, 전자, 주물목형, 판금용접으로, 고교 졸업 이상 학력 소지자를 대상으로 전형을 거쳐 선발했다. 훈련 기간은 2년으로 3,344시간 교육을 받으면 일선 기업의 기능공을 재교육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1974년에는 기능공훈련을 위한 6개 공과 외에 목형, 용접, 기계조립, 배관, 전공, 목공 등 모두 12개 공과로 확대했다.
중앙직업훈련원 설치사업은 1973년 1차 사업이 끝난 후 2차 사업으로 1981년까지 연장되었다. 이 기간에 공업전자과정을 보강하고 시청각 기자재 보충, 열처리 금속표면 처리과정 신설, 실험측정기기 도입, 기타 훈련기법 개선사업 등을 진행했다.
한편 중앙직업훈련원은 1970년 경기지방기능경기대회를 시작으로 지방기능경기대회와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해 1970년부터 1975년까지 금메달 31개, 은메달 19개, 동메달 10개를 수상했다. 국제기능올림픽에도 참가해 1971년 스페인 히혼기능올림픽에서 동력배선 직종의 이순종 선수가 은메달을 수상해 기능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직업훈련원,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에 통합
1977년 4월 중앙직업훈련원은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직업훈련원으로 거듭났다. 이에 따라 기관명을 ‘국립중앙직업훈련원’으로 개칭했다. 1976년 공공직업훈련체계를 개혁해 기존 3개 공공직업훈련시설의 운영체계를 국립에서 법인체로 변경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이로써 중앙직업훈련원만 국립으로 운영하게 됐는데, 이는 국립중앙직업훈련원의 설립목적이 기능훈련을 전담할 직업훈련교사를 양성하는 데 있으므로 이 과정을 국가가 직접 지도·감독함으로써 교사의 자질을 높여 공신력을 갖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와 함께 훈련생 모집방법이 종전 공개선발제도에서 시군 단위의 추천제로 변경됐으며, 훈련생 학자금 대부 혜택이 마련되고 국립중앙직업훈련원부터 모든 직업훈련시설에 교사아파트가 건립되기 시작했다.
1978년 국립중앙직업훈련원은 전문과정을 통폐합하여 9개 공과로 재정비했으며, 1980년에는 기사 1·2급 자격 교사를 양성하는 3년제 고급과정 6개 공과를 개설했다. 이후 1981년까지 총 2,596명의 직업훈련교사를 배출했으며, 이들은 각급 직업훈련원을 비롯하여 일반 기업에 취업했다.
1982년 3월에는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에 통합되어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재개칭했다. 당시 중앙직업훈련원은 대지 6만 2,000여 평에 본관·강의실·실습장·기숙사 등 연건평 9,770여 평, 그리고 각종 공구와 장비 2,005종 2만 2,049점을 보유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갔다. 훈련과정은 전문과정과 면허과정, 재훈련과정으로 진행했다. 전문과정은 2년 정규과정으로 직업훈련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이었고, 면허과정은 각급 훈련기관에 근무하는 무면허 교사들을 3개월간 교육해 면허교사로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재훈련과정은 3년 이상 근무한 교사들에게 1개월간 교육하는 과정이었다. 그중 전문과정은 주물목형과(35명), 기계과(140명), 제관용접과(70명), 배관과(70명), 차량정비과(35명), 전기과(35명), 공업전자과(35명) 7개 공과로 이루어졌다. 교육방침은 실기 위주의 산 교육 지향, 교사의 자질 향상을 통한 교육의 내실화, 교육환경의 개선으로 전인교육 도장화, 효율적인 교육지원체제 확립 등이었다. 특히 교재 개발과 철저한 교보재 확보에 힘써 1982년에만 82개 과목의 교재를 개발했다. 당시 국립중앙직업훈련원의 검정합격률은 평균 90% 이상이었으며, 취업률은 100%에 가까웠다.
1983년에는 교사양성 전문과정을 폐지하고, 1급 기능사 향상과정으로 개편했다. 1984년에는 산업사회의 변화와 기업체의 요구에 따라 감독자, 관리직 과정을 개설했으며, 1986년 공학관 준공과 함께 전산응용기계과를 신설했다. 1987년 1월에는 직업훈련기본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종전 직업훈련교사를 종합, 이론, 실기, 일반교사 등 4단계로 구분하던 것을 전문교사와 일반교사로 단순화하고 직업훈련교사 향상과정을 개설하여 직업훈련교사들의 자질 향상과 승급자격을 부여했다.
한편,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훈련대상의 고학력화에 부응하는 우수 직업훈련교사 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213억 7,400만 원을 투입하여 1989년 중앙직업훈련원 부설 서울국제직업훈련원을 설립했다. 이후 서울국제직업훈련원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동구권 등 62개국의 기능관계자에게 우리의 기술을 전수해주는 등 개발도상국의 기술발전과 민간외교 역할을 했다.
인천기능대학, 21C 산업인력 배출의 산실
1992년 3월 중앙직업훈련원은 인천기능대학으로 승격했다. 이와 함께 기능계 최고의 자격인 기능장과정 중심으로 개편했다. 이로써 교육과정은 기능장 양성과정, 기능사 양성 2년 과정(기능사 1급, 기사 2급), 기능사 양성 1년 과정(기능사 2급), 직업훈련교사 양성과정(면허과정), 직업훈련교사 향상과정, 직업훈련교사 재훈련과정 등 모두 8개 과정으로 재편되었다.
기능사 1급 자격 취득 후 실무경력 6년 이상 기능인만이 응시할 수 있는 기능장과정은 기계공작, 용접, 차량, 산업설비, 전기 5개 공과로 정원은 각 20명이었다. 기능사 양성 2년 과정(기능사 1급, 기사 2급)은 기계가공, 전산응용기계, 배관, 용접, 차량정비, 금형, 금속주조, 전자, 전기 9개 공과에 정원 390명이었다. 시설과 장비도 늘어나 대지 6만 2,936평, 연건평 1만 978평의 규모로 본관, 강의실, 실습동, 생활관, 외국인 기숙사, 식당, 교사아파트, 부대시설 등과 2,265종 3만 374점의 최신 장비를 갖췄다.
1993년 산업설비, 전기 등 2개 학과를 신설하고 1994년 3월 다기능기술자 양성과정을 추가했다. 학과도 확대해 전산응용기계, 금형, 생산자동화, 산업설비, 자동차, 전기, 전자, 재료, 산업디자인의 11개로 운영했으며, 1996년 3월에는 기능장 야간과정도 개설했다.
1995년 12월 기능대학법 개정에 따라 기능대학 다기능기술자과정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대학 3년 편입자격을 부여했으며, 1998년 1월 기능대학 다기능기술자과정 졸업자에게 산업학사학위를 수여해 학력과 기술을 갖춘 기술인력을 양성하게 되었다. 이로써 다기능기술자와 기능장을 양성하는 공공 직업훈련 교육기관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1997년 10월 인천기능대학은 기술개발 및 기술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산학기술연구소를 설치하고 단기성 애로기술을 타개하기 위한 중소기업 지도대학을 운영했다. 정부와 대학, 중소기업이 삼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중소기업의 애로기술을 해결함으로써 기업에는 경쟁력 확보의 이점을, 학교에는 현장연구를 통한 교육의 내실화와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뒀다. 이밖에 2000년에 인천기능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을 설립하고 시제품제작센터를 신축했으며, 2002년에 메카트로닉스학과동을 신축했다.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 대학 발전 로드맵 수립
2006년 3월 인천기능대학은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로 학교명을 변경했으며, 2007년 7월 ‘한국폴리텍Ⅱ대학 인천캠퍼스’로 재개칭했다. 당시 학과는 다기능과정 주간 및 야간 15개 학과로 운영했다.
2009년 인천캠퍼스는 발전 로드맵 3단계를 수립했다. 전국 폴리텍대학 평가순위 1위를 목표로 신성장 동력산업 위주로 학과를 개편하고(1단계), 지역과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대학을 목표로 국내 4년제 대학의 우수 교육프로그램을 분석해 적용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재정비하며(2단계), 국제적 인재를 개발해 대학 브랜드를 세계에 알린다(3단계)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2010년 학과를 개편하여 기존 13개 학과를 11개 학과 26개 융합 및 특성화 분야로 재편성했다. 그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2년제 대학 졸업 이상 학력 미취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 교육과정도 운영했다. 모집과정은 입체영상제작, 차세대 이동통신 장비 운용,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 개발,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 6개 과정이었다. 학과개편은 계속 이어져 2011년 전문대학 이상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1년 과정의 기계설계제작과, 2012년 학위전공심화과정 2개 공학과, 2013년 다기능기술자과정 건축설계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학위전공심화과정도 증설해 모두 5개 공학과로 운영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언어교육과 인성교육도 실시했다. 시설도 잇달아 신축했다. 2008년에 BTL 공학관과 기숙사(백두관), 체육관 및 학생종합복지관을 차례로 준공하고 2009년 학생회관, 2011년 공학관과 대학본관을 준공했다. 이어 2014년 역사관을 개관하고 인조잔디 운동장을 조성했다.
4차 산업혁명 선도, 융복합의 창의적 기술인재 양성
2018년 개교 50주년을 맞은 인천캠퍼스는 ‘일자리특화대학 50년 재도약’을 슬로건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스마트 시대에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두 가지 이상의 기술을 병행한 융합형 교과과정을 운용해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기술인재를 양성을 목표로 기존 기간산업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동시에 교육하는 투트랙(Two track) 인력양성체제를 가동했다. 또 정부가 2022년까지 전국 10곳의 산업단지를 스마트 산단으로 지정해 육성하는 정책에 맞춰 스마트공장 특화캠퍼스로의 진화를 서둘렀다.
2017년 3월부터 P-TECH 시범운영기관 1기로 교육을 시작했다. 학습근로자들은 1년 6개월 동안 기업과 대학을 오가며 수업을 참여하였으며 2018년 9월 P-TECH 1회 졸업생 37명도 배출했다. 더불어 그해 열린 일학습병행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P-TECH 협약기업인 경성시험기와 신일이엔티가 각각 학습기업 부문 대상과 기업전담자 부문 우수상을 받아 기쁨이 더욱 컸다. 구성원 간 소통도 중시해 용역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도모하고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과 직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교직원 전체가 참여한 한마음 축제와 워크숍을 실시했다.
2018년 말에는 폴리텍대학 중 가장 먼저 러닝팩토리 ‘융합실습지원센터’를 개관하고, 금형디자인, 산업디자인, 기계시스템 3개 과 공통 교과와 학과별 프로젝트 실습을 진행했다. 러닝팩토리는 대학 내 학과 간 칸막이를 없애고 설계에서 제품 완성까지 통합교육이 가능한 융합플랫폼 실습시설로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혁신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인천캠퍼스는 융합실습지원센터 실용화와 운영 정착을 위한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했으며, 이곳을 개방해 인근 소규모사업장 근로자들의 기술교육장과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창업 진로체험장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러닝팩토리는 교육과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2020년 인천캠퍼스는 융합프로젝트실습 과목으로 융합기술기초(12개 과), 융합기술응용(로봇 분야 등 7개 과) 등의 과목을 운영했다.
이에 앞서 2019년 8월에는 인천캠퍼스가 스마트산단 특화캠퍼스에 선정, 이를 계기로 생산정보 수집, 분석 및 시스템 기반 공정제어 교육이 가능하도록 학과를 개편했다. 스마트산단 인력 양성 학과로 선정된 금형디자인과는 스마트금형과로 개편하고, 2020년부터 2년제 학위과정, 전문기술과정, 재직자 직무능력향상과정을 운영했다.
미래산업 선도 및 인력 양성을 위한 핵심기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학과개편은 계속되었다. 미래성장동력학과로 선정된 자동차과를 스마트자동차전공과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전공으로 개편하고, 스마트 자율주행자동차 시스템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여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기술을 갖춘 인재 양성에 나섰다.
2020년 3월에는 국내외 스마트팩토리의 성장과 글로벌 제조기업들의 도입이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해 전국 최초로 스마트로봇을 실습하는 스마트팩토리과를 신설했다. 하이테크과정인 스마트팩토리과를 위해 인천캠퍼스는 첨단 로봇 40대를 도입하면서 산업혁명을 이끌 학과를 신설했다. AI융합소프트웨어과는 학과개편을 통해 스마트산단 인력양성사업의 바통을 이어 받았으며 방송미디어과는 미래성장학과로의 개편을 이어 갔다. 교육산업의 일환으로 또 교육 방식의 획기적 변화를 위해 건물과 기계에 사물인터넷(IoT) 기술도 접목해 나가고 있다.
인천캠퍼스는 글로벌 교류에도 힘을 쏟았다. 2008년 6월에 학위취득협약을 체결한 이후 교류를 계속해온 미국 워싱턴주 레이크워싱턴 기술대학(LWTC)에 이어 2019년 6월 중국선전폴리텍대학과 교류 협정 및 상호 학생연수(캠프) 협정을 체결하고, 교육훈련 및 학술연구 분야의 정보 교환과 상호 방문을 통해 교육과 문화를 교류하고 있다. 또 KOICA와 업무협조약정을 체결하고 개발도상국 직업기술교육 분야 해외 봉사활동을 확대했다. 이처럼 인천캠퍼스는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창의교육을 선도하고 미래산업 역군과 글로벌 인재 양성의 핵심기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대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직업교육 패러다임을 선도하며 신산업 분야 기술인력 양성에 앞장서 나갈 것이다.